4) 진국과 삼한
한강 이북의 예맥족이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의 연맹왕국과 고대 왕국을 건설해 갈 무렵, 한강 이남의 한족 사회에서도 같은 유형의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에 기초하여 정치적 통합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족도 원래의 중국 동북 지방에서 이주해 온 동이족의 한 갈래로서 예맥과는 언어와 문화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었다. 기원전 8세기경에 이미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높은 수준의 비파형 동검이 사용되었고, 거대한 바둑판형 고인돌이 축조되었으며, 세련된, 간 돌칼 등이 사용되었고, 기원전 4세기 이후에는 세형동검을 사용한 것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수많은 성읍 국가들이 성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비록 시대는 내려가지만, 기원후 3세기경에 편찬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삼한에 소속된 나라들이 무려 70~80개에 이르며, 큰 나라는 1만 호, 작은 나라는 6~7백 호를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남한지역에서 국가 형성이 빠른 지역은 한강 유역, 금강 유역, 섬진강 유역, 영산강 유역 등의 황해와 남해안지역으로서 고인돌과 청동기 유적이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다. 낙동강 유역은 상대적으로 늦었다. 마한으로 불리던 이 지역은 중국과의 교통이 편하고, 토지가 비옥하며, 물산이 풍부하여 고조선에서 망명하는 정치집단이 가장 먼저 정착하는 곳이기도 했다.
남한 지방에 세워진 최초의 연맹 국가는 기원전 4세기경에 세워진 진국이었으며, 그 중심지는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의 서해안지역으로 보인다. 그 후 진국은 한나라와 직접 교역을 할 만큼 성장했는데, 기원전 2세기에 위만조선이 세워져 진국과 한의 교역을 방해하자 위만조선을 매개로 중개무역을 했다.
기장 조선이 위만에 망하자, 준왕을 비롯한 고조선의 망명객들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오고, 다시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이 한에 망하면서 그 지배층이 대거 남하하면서 진국의 사회발전이 촉진되어 삼한이 형성되었다. 그중 천안, 익산, 나주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을 관할한 것이 마한으로서 기자조선 망명인이 정권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준왕이 뒤에 한 왕이 되었다고 한 것이 그러한 사정을 말해준다.
마한에는 54개 소국이 소속되어 10만여 호를 거느렸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큰 나라는 1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였다고 한다. 이 나라들이 하나의 통일왕국을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천안, 익산, 나주 지방에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경상남도 해안지방의 김해, 마산지역은 해로가 발달하여 바다를 통해 외부 세력이 쉽게 들어오고, 철이 많이 생산되어 일본과 낙랑에 수출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해상국가가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변한이다. 변한에는 12개의 소국이 있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낙동강 유역과 경주지역에는 위만조선의 지배층이 대거 남하하여 진한을 형성했다. 위만조선 말기 2천여 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이주한 조선상 역계경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들은 마한 지역으로 오려다가 여의치 않자 낙동강을 따라 경상도로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어떤 기록에는 진한이 진나라 유망민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이는 진이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 위만이 중국에서 오고, 위만의 후예들이 진한을 형성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진한에도 12개의 소국이 있었다고 한다.
삼한 중에서 가장 먼저 국가를 형성하고, 세력이 가장 컸던 것은 마한이었다. 그래서 마한 54국 중에서 세력이 가장 큰 목지국의 지배자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를 통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한강 하류의 유역의 백제국이 점점 세력이 커지면서 천안지방의 목지국과 대립하는 형세를 보이다가 부여족이 내려와 한강 유역에 건국한 백제에 의해 통합되고 말았다.
진국과 삼한은 기원전 3세기 이후 북방에서 온 이주민들의 영향으로 철기문화 단계로 들어갔다. 그래서 괭이, 보습, 낫, 호미 등 각종 철제농기구가 만들어지고 땅이 비옥하여 농업생산력이 크게 발전했다. 경남 의창 다호리의 무덤에서 철제농기구가 발견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특히 기후가 따뜻하고, 우량이 풍부하며 저수지가 많아서 일찍부터 벼농사가 시작된 것은 삼한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전북 김제의 벽골제, 충북 제천의 의림지 같은 저수지는 마한시대를 만들어진 것이다.
5) 삼한의 풍속과 예술
삼한은 고급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되고 농업이 발달하여 권력과 부를 장악한 족장 세력이 많았다. 이들 족장을 신지, 험측, 번예, 살해, 견지, 부례, 읍차 등으로 불렀다. 이는 모두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토착어이다. 족장들은 토성이나 목책으로 둘러싼 읍에 거주하고, 죽어서는 고인돌보다 한 단계 진화된 움무덤과 돌덧널무덤에 매장되었으며, 종전보다 세련된 세문경과 세형동검을 차고 다니면서 자신들의 권위를 뽐냈다.
삼한의 정치적 지도자가 족장이라면, 종교적 제사장의 기능을 가진 것은 천군이었다. 천군은 무당과 같은 존재로서 솟대라고 불리는 독립된 영역을 지배했는데, 이 지역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북을 달아서 종교의식에 사용했으며, 죄인이 들어오더라도 잡아가지 못했다. 무당이 대를 들고 굿을 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는 정치와 종교가 이미 분리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제정이 일치되어 있던 고조선이나 부여에 비해 한 단계 진화된 모습이다.
출처: 다시 찾는 우리 역사(고대. 고려)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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